싸게 만든 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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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07회 작성일 21-08-09 10:08본문
싸고 좋은 것을 찾는 것은 누구나 원하지만 막상 싸고 좋은 것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비슷한 물건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샀다가 뭔가 모르게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느껴지면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을 떠올리며 후회를 한다.
‘비싼 만큼 제 값을 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비싸게 주고 산 물건에 모두 만족을 하는 것도 아니다.
비용을 많이 치렀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생기면 돈이 아깝기도 하고,
짝퉁을 속아서 산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배신감마저 느끼기도 한다.
며칠 전 의료보험으로 임플란트를 시술받는 환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의료보험으로 하는 임플란트라서 싼 걸로 하는 것 아닌가요?”
비용이 저렴해지면 기분 좋은 마음이 들기 전에 문득 의심이 들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심리인 것 같다.
세일 폭이 많은 물건, 홈쇼핑같은 데에서 시세보다 많이 저렴하게 파는 물건 등등.
싸고 좋은 물건은 구입했을 때는 득템의 기쁨을 누리지만,
싸게 샀는데 물건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의 심정을 누구나 경험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꽤나 오래 전의 일이다.
나이 많으신 할머니가 치아가 하나도 없으셔서 위아래 틀니를 하시기 위해 내원하셨다.
상황을 보니 혼자 사시면서 형편도 넉넉지 않으신 것 같은데, 그동안 치아 없으신지 오래라 잇몸만으로 식사를 해오셨다.
치료비를 흥정하고 깎아주기를 원하는 환자를 대할 때면 내가 치과의사가 아니라 물건을 파는 사람같은 느낌이 들고,
마음이 힘들고 싫은 느낌이 많이 들기도 해서 ‘치료비에 대한 흥정은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데,
어렵게 마련한 틀니 비용이라며 종이봉투에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싸가지고 와서 내미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짠해졌다.
틀니 비용이 얼마라는 설명도 드리지 않고 ‘이정도 치료비면 충분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리고는
사실 말도 되지 않는 그 금액을 치료비용으로 받고, 오히려 더 정성스럽게 의치를 만들어드렸다.
어차피 치료비 생각하지 않고 해드리는 것이라, 오히려 할머니가 틀니를 더 오래 쓰기를 바라는 마음에
틀니에 사용한 치아도 일반적으로 쓰는 레진 치아대신에 세라믹 치아를 사용하였다.
(일반적인 레진치아는 마모가 잘 되는 반면에 세라믹은 단단하고 잘 마모되지 않아 견고하게 오래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제작 과정이 레진치아에 비해 어렵고 재료 자체의 값이 비쌌다.)
할머니에게 틀니를 끼어드리는 날,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고,
‘내일 친구들과 놀러 가는데 잘 먹을 수 있겠다’며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는 나 역시 뿌듯한 마음이었다.
점검과 조정을 위해 일주일 후로 예약을 잡아드렸는데, 할머니는 이틀 후에 병원을 찾아오셨다.
의치를 끼고 오신 것도 아니고,
의치가 담긴 허름한 검은 비닐봉지를 하찮은 물건인 양 내게 던지듯이 건내시면서 한동안 푸념을 늘어놓으셨다.
“놀러가서 친구들하고 밥을 먹는데 내 틀니만 딱딱거리며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친구들 틀니는 얄쌍하고 자그마한데 내 틀니만 왜 이렇게 큰지 모르겠다”
“친구들은 틀니 낀 첫 날부터 과일도 먹고 고기도 먹었다는데 나는 아파서 잘 먹지도 못했다”
이런 저런 푸념의 결론은 결국 다음 말씀 속에 다 담겨 있었다.
“내가 돈이 없는 늙은이라 싸게 해준다고 재료도 싸구려로 해주어서 치아 부딪치는 소리가 많이 나고,
틀니도 큼지막하게 대충 만들어서 많이 아픈 것 아니냐.”
세라믹 치아와 레진 치아의 차이점과 좋은 점을 설명하고,
틀니에 관한 책자를 열어 잘 만들어진 틀니와 잘못된 틀니의 사진을 비교해서 보여드리며 한참을 설명드렸다.
틀니를 처음 끼면 아픈 곳이 생길 수 있음과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이틀 전에 이미 설명 드렸지만,
다시금 찬찬히 설명을 해드리고 의치를 점검해서 수정하면서 겨우 할머니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후로 한 번, 두 번 내원하시면서 의치 수정을 마치고 식사를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되시자
다음번 내원하실 때에 박카스를 한 박스 사가지고 오셨다.
‘지금은 식사도 잘 하고, 친구들을 만나면 틀니를 빼서 보여주시면서 자랑하신다’는 말씀으로
오해로 인해 화를 내셨던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전해주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도 그 할머니의 에피소드를 기억할 때면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해본다.
“정상적인 치료비를 지불하셨다면
처음 틀니를 끼시고 느꼈던 불편함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더 넓었을텐데,
싸게 해준 치료비 때문에 오히려 불필요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선의로 더 잘해드리고자 해드렸던 치료가 오히려 무색하게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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