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와 흐르는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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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89회 작성일 21-08-2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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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화투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 모르겠지만, 어른들이 모이면 자주 화투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온 나에게는 화투장을 수놓은 그림은 가족들이 모여서 웃고 떠들고 즐기는 정겨운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화투를 치면서 떠들썩하게 웃고 때로는 싸우는 듯 큰 소리를 내는 모습도 그렇고, 한가한 시간에 홀로 앉아 담요 위에 화투장을 한 장 한 장 떼면서 운세를 점치기도 하는 모습도 그렇다.

 

화투를 생각하면 도박과 연관된 범죄의 현장이 떠오르거나, 영화 ‘타짜’에서의 아슬아슬하고 살벌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화투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가수를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젊었던 시절 이집 저집 모여서 밤이 늦도록 화투를 치면서 친목을 다졌던 친구들의 모습이 그립기도 하고, 명절이면 수십 명의 일가친척들이 한 집에 모여 삼삼오오 짝을 지어 화투판을 벌이던 대가족 시대의 정겨움이 가득했던 친지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물론 화투는 도박에 사용되어 패가망신을 시키기도 하고 가정을 파탄 내기도 하는 무서운 도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기도 하고 가족이나 친구들의 친목을 다지는 화목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무엇이든 잘 쓰면 약이 되고 잘 못 사용하면 독이 되는 것이니, 화투도 그런 양날의 칼을 지녔음은 분명하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도 가끔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서 화투에 얽힌 뉴스를 접하게 된다.

코로나 단계에 따라 모일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됨에도 불구하고 몇 명의 시의원이 모여서 고스톱을 치다가 방역수칙 위반으로 고발이 되기도 했고, 모 지역 확진자가 고스톱 판을 돌아다닌 바람에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는 사건이 생기기도 했다.

반면에 집에만 갇혀서 지내다시피 해야 하는 답답한 일상에서 새롭게 배운 화투로 인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집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을 달래는 재미를 느낀 사람들이 그 경험을 공유한 글을 블로그에서 접하기도 한다.


얼마 전 화투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 기사를 접하기도 했다. 그 주인공은 코로나로 인해 음압병상에 입원한 90세가 넘은 할머니와 함께 화투를 치고 있는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였다. 격리병상에 홀로 앉아 코로나와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할머니에게 위로와 힘을 보탤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한 끝에 행해졌다던 그 모습은 읽는 이에게는 가슴 뭉클한 감동이지만, 방호복을 입고 코로나 현장을 누비고 있는 의료진들에게는 단지 감동 그 이상의 가슴 처절한 현장의 절박함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교육계를 은퇴하시고 개인치과를 운영하시던 원로 은사님을 새해 인사차 치과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 일흔이 훌쩍 넘으신 은사님의 병원은 한가로웠고, 찾아간 나를 반갑게 맞으시며 위스키를 한 스푼 가미한 맛있는 커피를 손수 내려주셨다.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아 잠시 대화를 나누던 중 테이블 위의 한 곳에 눈이 멈췄다. 화투판으로 쓰이는 담요 사이로 살짝 보이는 화투장이었다. 내 눈길이 그곳에 멈춰있는 것을 보신 은사님은 “백선생, 화투 칠 줄 알아?” 라고 물으시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하루 환자가 와봐야 오래 전부터 찾아오던 서너 명이 전부이니 하루 시간이 무료하셔서 누군가가 방문하면 이런 저런 환담을 나누시기도 하고 또 여유가 있으면 화투를 함께 치신단다. 며칠 전에는 세무조사를 위해 세무서에서 두어 명이 방문을 했기에, ‘환자도 없는 병원에 무슨 세무조사냐’고 하시며 시간 되면 화투나 함께 치다가 가라고 하셨다는 말씀에 어르신의 여유와 연륜이 묻어나온다.

늘 화통하시고 밝으셨던 은사님으로부터 학부시절부터 느꼈던 인상이 세월이 많이 흘러 연로하신 나이가 되셨음에도 그대로 느껴졌고, 무료한 삶 속의 여유로움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삼십여 년 전의 일이고 은사님은 이미 고인이 되셨다.

화투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새삼 그 때의 은사님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나의 치과의사로서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이시기도 하겠지만, 이제 조금 더 세월이 흐르면 내가 그 당시의 은사님의 나이에 접어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할게다.


이순이 접어든 나이에 새삼 내 이름으로 된 간판을 걸고 개원한지 두 달이 지난다. 어려운 시기라 걱정을 해주기도 하고 나이가 나이니만큼 체력을 걱정해주기도 하는 지인들의 우려 속에 요즘도 여전히 종일 환자를 진료하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

체력이 달리면 환자 수를 줄여야 하고 손이 떨리기 시작하면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치과의사의 길이기에 매일 체력 관리를 위해 전신 운동을 하고 건강을 체크하고 손가락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원장실에 앉아 테이블 위에 화투장을 펼쳐 놓고 다시금 그 은사님을 떠올리며 당시의 은사님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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