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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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6회 작성일 21-08-28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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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동안 지역의 특성 때문인지 정치계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치과에서 접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정치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내던 터라 치과에 내원해서 접수를 하면서

자신이 국회의원이라고 소개를 해도 내가 잘 몰라봐서 다소 민망한 경우도 있었지만,

한 눈에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던 유명한 장관도 계셨고,

치료할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거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오르셨던 분도 계셨고,

치료할 때에는 정치인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의 유명인이었지만 나중에 정당 대표가 되시고

대통령 후보로 뛰셨던 분도 계셨으니,

내가 만일 다른 업종을 가지고 상업적인 목적의 운영을 하고 있었다면

이런 분들이 오실 때마다 함께 사진을 찍어서 벽에 걸어놓고 홍보에 이용할 궁리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내게는 그저 내게 치료를 받기 위해 치과를 내원했고

내가 최선을 다해 진료를 제공해야 할 한 사람의 환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진료에 임했기에

늘 내가 치료하는 다른 환자들과 동일하게 대했고,

그분들 역시 자신들이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보다는

내가 그렇게 평범하게 대하는 것에 오히려 편안한 느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오히려 좀 더 정중하기도 하고

좀 더 평범하고 편안하게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지 않으며 치료를 받으셨다.

어느 날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중에 대기실에서 조금 소란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조금 후에 ‘치과가 왜 이렇게 불친절해’라는 조금은 높은 톤의 목소리가

그냥 듣고 넘기기에는 불편하게 내 귓전에 울려왔다.

치료하던 환자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대기실로 가서 직원에게

왜 환자로부터 불친절하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 때만 해도 나는 잘 모르기는 했지만,

그 환자는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에 꽤나 당내에서 영향력이 있는 국회의원이었다.

예약한 시간보다 20여분을 늦게 치과를 오셨고,

나는 이미 그 뒤의 시간에 예약되어 내원한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했다.

약속해서 제 시간에 오신 환자들의 진료가 끝나야 봐드릴 수 있으니 기다려야 한다는 직원의 설명을 듣고는,

본인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빨리 진료를 해달라고 요구를 했고

그 과정 중에 국회의원인 자신에게 감히(?) 고분고분하게 먼저 진료의 우선권을 주지 않은

우리 직원이 있는 치과를 불친절한 치과로 낙인을 찍어버린 모양이었다.

대기실에서 그런 약간의 큰소리가 나게 된 자초지종을 직원으로부터 듣는 동안

‘시간이 별로 없으니 좀 빨리 진료를 해달라’고 내게 요구하는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의원에게 조용하고 정중하게 한 말씀을 드리고는 다시 치료실로 들어가 진료를 계속하였다.

“기다리실 시간이 없으시면 먼저 진료를 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지금 대기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직접 양해를 구해주시고,

지금 치료 중인 환자의 진료가 끝날 때까지는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아니면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실 시간으로 예약을 다시 잡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자리에 앉게 되어 대우를 받다보면 그 위치가 어떤 자리라는 것을 망각하기 쉬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런가.

그런 경우를 볼 때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며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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