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화관제훈련(권한과 권력, 그리고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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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06회 작성일 21-09-0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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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위나 서열이 거미줄처럼 얽혀진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러한 서열이 존재해야만 질서와 기능이 유지되고 조화로움이 유지될 수 있는 사회가 있는 반면에, 

그 서열로 인해 주어지는 권한에 의해 부여될 수밖에 없는 힘과 권력으로 인해 

종종 섬김을 받는 사람과 섬기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당연히 대접을 받을 사람이 대접을 받고, 섬김을 받을 사람이 섬김을 받는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섬기겠다고 목이 쉬도록 대중 앞에서 외치던 사람들이 그 순간이 지나면 군림을 하고, 

평생을 섬김의 삶을 살겠다고 서약을 한 사람들이 어느 순간이 되면 섬김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섬겨야할 대상으로부터 섬김을 받음을 당연시 여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주변에서 볼 수 있다.

권력이란 것은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신기한 힘이 있는 모양이다.


권력은 결코 무한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진리일진데, 

작든 크든 그 어떤 권력을 부여잡는 순간부터 사람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역설적으로 사람은 지독히도 약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1980년대에 ‘등화관제훈련’이란 것이 있었다. 

안보태세의 확립이었든 군사독재의 통치 수단이었든, 어쨌든 명분은 적의 공습에 대비한 훈련이었고,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등화관제훈련이 있는 날이면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일찍 귀가를 해야 했고, 

싸이렌이 울리면 불을 끄고 소리를 죽이는 훈련에 당연하게 참여를 했다.

그런데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창문을 통해 들려오던 고함소리가 여전히 귀에 생생하다. 

“야. 거기 이층. 불 꺼. 불 끄란 말이야.” 동사무소의 직원이었을, 그 당시에는 내 또래 정도, 

지금 생각해보면 젊다 못해 어린사람이 손전등을 창에 비추면서 집안에 누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막말과 반말을 섞어가며 어디든 불빛이 조금이라도 새나오는 집을 향해 내지르던 큰소리였다. 

평소의 그 사람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평소와 달라진 모습은 

그의 한 쪽 팔에 채워진 완장과 또 한 손에 들려진 손전등이었을 것이다. 

누가 누구랄 것도 없었다. 

그 당시 등화관제 훈련의 통제를 위해 어두워진 길을 돌아다닐 수 있는 특권(?)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한결같이 입에서는 험악한 반말과 큰소리를 내뱉어대곤 했다.

그저 팔에 두른 완장 말고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 

그 가볍고 자그마한 완장 하나에도 사람이 그렇게 한순간에 달라질 수 있음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에 나오는 속 터지게 느림보였던 나무늘보가 

엄청난 과속 운전의 장본인이었음도 그런 맥락에서는 암시하는 바가 크다.

 

선거철만 되면 허리가 부러지라고 인사하며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노라고 조아리는 사람들의 

선거 전후에 달라지는 그들의 자세,

평생을 종의 자세로 섬기겠다는 마음으로 고귀한 성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분들이 

어느 순간부터 ‘종놈’이 아닌 ‘종님’이 되어,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기에 익숙해진 수많은 ‘주의 종들’,

직장이든 단체든 일단 ‘장’이라는 직함이 붙는 순간부터 그에게 주어진 권한을 권력으로 휘두르기 시작하는 사람들,


어떤 권한이 주어지면 조용했던 사람들이 더 많이 돌변하는 경우를 종종 접하다보니, 

어쩌면 그런 변화는 자신 안에 숨겨져 있던 더 큰 나약함을 역설적으로 표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아픔을 가지고 많은 환자들이 치과를 찾아온다.

원장이라는 자그마한 명찰을 달았다는 것으로 인해 치과에서 늘 접하는 직원이나 환자들에게 

갑질을 하고 또 때로는 그들을 아래로 보고 마음을 서운하게 만드는 일은 없었을까?

때로는 바쁨을 핑계로 환자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내 방식대로 치료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치아의 치료에만 집중하느라 아파하고 불편해하는 환자의 표정이나 몸짓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불편한 부분을 호소하는 환자의 말에 끝까지 귀 기울이지 못하고 

내 식으로 서둘러 진단을 하고 치료를 서둘러서 환자의 마음을 서운하게 하지나 않았는지.


오늘도 나를 접하는 사람들을 늘 귀하게 여기고 섬기는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세심하게 돌이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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