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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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98회 작성일 21-09-1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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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개원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모 방송의 무슨 프로그램 제작자인데 출연 요청으로 통화를 원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를 직원이 건네준다. 

지난 수년 동안 치과에 관한 여러 가지 상식이나 지식에 관한 기사가 내 이름과 함께 일간 매체에 많이 실리기는 했다. 

그래서 검색란에 ‘백영걸’이라는 이름 석 자를 치면 수없이 많은 기사들이 검색되기는 하지만, 

그동안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제 개원하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어떻게 ‘백영걸치과’를 알고 치과번호를 통해 그런 섭외가 들어왔는지 조금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별 것도 아니었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가끔 매스컴에 이름이나 얼굴이 나오기는 했었다. 

군의 18기 훈련을 마치고 대위로 임관을 하던 1988년도 군의학교 임관식에서 의무사령관상을 수상한 것이, 

라디오의 임관식에 관한 뉴스를 통해 이름 석자가 들려오기도 했었고, 

열흘이 넘는 세무조사를 받은 후에 오히려 성실납세자로 선정되어 표창을 받았을 때, 치과로 찾아온 아나운서와 인터뷰를 하면서 

“당연히 내야 할 것을 냈을 뿐인데......” 라고 했던 부분이 강조되어 정규방송 뉴스에 나오기도 했었고, 

오전에 방영되는 잔잔한 프로그램에서 치과 한구석에 방음실을 꾸며놓고 

이른 아침마다 색소폰을 연습하는 치과의사로 소개되면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가기도 했었다. 

시사잡지에 치과의사로서의 삶에 대한 기사가 실리기도 했었고, 

자동차 잡지에 마티즈를 타는 치과의사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었고......


하지만 여의도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을 때, 인터뷰를 통해 잡지에 몇 페이지가 할애된 기사가 실린 후에 작은 일을 겪었다. 

그 잡지사를 운영하는 분이 찾아와 잡지에 실린 기사를 보여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탁 아닌 요구를 해왔다. 

일정 부수의 잡지를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잡지에 실린 사람들이 몇 백 부씩 구입을 해서 활용을 하는 것이 통념이란다. 

결국 그리 많지 않은 부수를 구입해서 쌓아놓기는 했지만 매우 불쾌한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그런 구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그런 기사에 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방송이든 기사든 주최측에서 기획하고 진행을 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출연료나 기사에 대한 대가를 내가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통화 결과는 역시 예상했던 바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제안 속에 숨겨진 결론은 내가 일정 부분의 제작비를 부담해야 하고, 

방송 이후에 제작되는 이런 저런 홍보물과 그 방송 분량을 통해 병원의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인터넷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방송에 출연(?)할만한 사람을 물색하고,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을 마치 그 분야의 권위자인 양 포장을 하고, 

그걸 시청하는 사람은 그 방송에 출연한 사람을 권위자로 알고 찾아가게 되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에 얼마간의 비용을 부담하고 참여해서 방영되는 방송, 

돈만 내면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결국 방송을 통해 선전비를 내고 

나를 광고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고 정중히 거절을 했다.


적어도 방송의 출연자로 선정을 하고 제안을 하려면 최소한 내가 어떤 의술을 행하고 있고, 

어떠한 나만의 컨셉을 가지고 진료에 임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그 분야에서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을 거친 후에 진행을 하는 것이 

수많은 시청자를 위해 공신력 있는 방송매체가 갖추어야 하는 기본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정보의 정확도와 진위 여부를 판단해야 할 책임이 정보를 제공한 주체가 아니라 

점차 정보를 접하는 개개인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기에 

항간에 떠도는 수많은 정보들의 신뢰도는 떨어지고 오히려 불신도 크게 조장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때로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치과 치료에 관한 이야기를 환자를 통해 접하면서 

인터넷을 통한 정보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는 경각심을 가져보기도 하지만, 

간혹 인터넷을 통해 얻은 신뢰성 없는 정보를 과신함으로 인해 정상적인 치료방법을 제시해도 

오히려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신감을 표하는 환자들을 접하는 안타까움을 겪기도 한다.

 

어쩌면 다시는 그런 섭외가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예전에 잡지 사건을 겪은 후에 나름대로 정리했던 방송매체 출연에 대한 생각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방송을 위해 나의 시간과 경험과 지식과 이름을 제공해야 한다면 오히려 출연료를 받아야지, 왜 내가 돈을 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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