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와 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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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91회 작성일 21-07-29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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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오래 전에 아날로그 와 디지털에 관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아날로그를 들먹이는 것만으로도 내가 이미 구세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씁쓸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근래에 새삼스럽게 손끝의 느낌과 기계가 주는 편리함 사이에서 새로운 생각을 해본다.

   

신경치료를 할 때 요즘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근관장측정기나 근관확대기가 없던 시절부터 진료를 해왔기에, 

나는 치근의 길이를 측정할 때 파일이 치근단에 도달하는 지점을 손끝의 감각으로 느끼고나서 

엑스레이를 찍어 확인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근관측정기의 사용이 일반화가 되어가도, 나는 늘 먼저 손끝의 감각을 느낀 후에 그것을 확인해보는 용도로 

근관측정기를 사용하면서 내가 느끼는 감각의 정확성을 확인하며 유지했고,

근관확대를 시행할 때에도 편리한 많은 기계들을 뒤로하고 손끝의 감각에 의존하는 핸드 화일링을 고집했다.

한 달 전에 새로이 개원을 하면서 근관장측정기 겸 근관확대 기능을 하는 VDW.GOLD RECIPROC 이라는 기계를 구입하고도

정작 거의 석 주가 지날 때까지는 근관장의 확인을 위해 사용을 했고 그 외의 기능에 관해서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정신없이 병원을 준비하여 개원하고 한 달이 지나가는 요즘, 

개원하면서 구입한 기계들의 기능을 찬찬히 뜯어보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전자차트와 태블릿을 도입하고는 첫 날 첫 환자를 검진하면서 

검진기록을 전자차트 어디에 어떻게 남겨야 할지 몰라 당황하며 종이쪽지에 써야만 했던 일도 있었지만, 

이제는 전자차트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면서 종이차트를 잊어간다.

임플란트의 골융합강도를 측정하는 OSSTELL(이것에 관해서는 다시 이야기할 기회를 가지려 한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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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식립한 임플란트를 측정해보기도 하고, 

요즘은 임플란트를 식립할 때마다 식립 직후에 측정해보며, 

앞으로 보철을 할 수 있는 시기를 결정하는 데에 어느 정도 신뢰를 가지고 적용할 수 있는지 나름대로 데이터를 수집해보기도 한다.

너무도 바삐 보냈던 지난 십 년 동안 다양한 환자의 케이스를 남길 사진을 찍을 시간조차 없어서 

한 구석에 모셔 놓았던 카메라를 꺼내보니 상태가 엉망이 되었기에, 

CANON EOS 6D Mark II 본체를 구입하고, 가지고 있던 마크로렌즈를 장착하여 환자의 구강 상태를 담아내는 것도 시작했다. 

물론, 그동안 발전된 카메라의 새로운 기능을 익히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젊은 시절엔 나름 얼리아답터라 자칭하며 뭔가가 새로 나오면 먼저 구입하고 기능을 익히는 재미를 즐겼었는데, 

이제는 복잡한 것을 새롭게 익히는 것에도 둔하고 일단 복잡한 것을 대하면 싫은 느낌부터 드니, 

이런 것들이 이길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인가보다.

 

RECIPROC을 언급하려다가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각설하고, 참으로 필요한 기능이 잘 갖추어져서 신경치료를 매우 편리하고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고안된 기계라는 생각이 든다.

치근단의 위치를 세부적으로 정확히 측정해주는 기본적인 기능은 일반 근관장측정기와 별 차이가 없지만, 

매뉴얼에 따라 근관확대를 시도해보니 ‘참으로 똑똑하구나’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파일을 회전하면서 조금씩 진행을 시키다가 근단에 접근하면 경고 알림이 울리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더 진행을 할라치면 스스로 회전 방향을 바꾸어 파일이 빠져나오게 만든다. 

근관을 확대하다가 파일이 조금이라도 빡빡해져서 조금이라도 무리하게 토크가 높아질라 치면 

회전이 멈춰버리고 페달을 다시 밟으면 반대로 회전하면서 빠져나와버린다. 

이러한 작동의 예민하고 정확한 정도가 이전에 몇 번 써보고는 접어버린 

다른 근관치료 기구와 비교할 바가 없이 좋은 것 같다. 

이 정도라면 신경치료의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초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은 기계를 완전히 믿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번호가 낮은 파일의 파절에 대한 노파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기에 

일단 근관장측정이 끝나면 #20까지는 핸드화일링을 하고 그 이후로 RECIPROC을 사용하여 근관확대를 하고 있지만, 

어쩌면 조금씩 더 과감하게 이 기계를 사용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근관치료를 할 때 여전히 행하는 한 가지 치료 습관이 있다.

RECIPROC을 먼저 연결해서 근관장측정을 하기 전에 나는 늘 먼저 파일을 이용해 근관을 찾고 

조금씩 근첨을 향해 접근하면서 손가락 끝에 전달되는 느낌을 통해 치근단에 도달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RECIPROC을 연결하여 길이를 확인하고 내 손끝 감각의 정확성을 확인한다. 

두 가지가 맞아 떨어질 때의 뿌듯함은 곧 내가 오랜 세월 다져온 감각의 정확성에 대한 보상이자 자부심이다.

 

기계가 좋아져서 좋은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요즘의 세상이지만, 

그래도 최종적으로 장인의 손길을 거쳐 완성되어지는 HAND MADE가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고 명품으로 통하는 것처럼 

나 역시 세월이 더 흘러 아무리 좋은 도구가 개발된다고 해도 

내 손끝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그 감각을 통해 만들어지는 작품은 쉽게 포기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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